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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스피드웨이 외로운 주행 통틀어 세번째 날.

회사도 바뀌고 일도 바뀌고 둘째도 가지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여긴 오래만에 들어와 보는건데~ 그나저나 오늘 오전에 무리해서 시간을 내가지고 용인스피드웨이에 갔었지요.한번 달릴라고~ 첫번째 타임에는 비도 온데다가 아직 미숙한 스킬로 인해 스핀을 연달아 두번했지요.1번코너에서 ....저번엔 5번 - 6번에서 연달아 두번이나 스핀했는데 오늘은 1번에서 두번... 인터넷 뒤져보니 1번과 5-6번이 어려운 코너라네 ... 그러다가 30분 주행시간중 10분여 를 남겨놓고 8번코너인가 직선주로를 남겨 두고 좌우연속 코너 진입부에서 앗차 궁뎅이가 돈다 순식간에.. 바로 전 1번에서 약간의 카운터로 차를 바로잡았기에 조금 무리해서 진입해 보았는데 스핀은 순식간이네~~ 오버나며 스핀되면서 차가 가드레일로 향하네~~ 헉~~ 쿵~~ 피트 들어와서 보니 좌측범퍼가 옆으로 조금 삐져 나와있다. 주먹으로 두들겨 넣은후 주행을 다시 했지요.. 언젠가 이런일이 있을줄 알았기에 슬프지도, 안타깝지도 않네.. 전복된것 아니고 앞뒤 문짝 갈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굳이 돈 안들어도 될만한 사고이기에.. 범퍼랑 본넷만 약간 상했네... 절대 절대.. 오버스피드로 진입하면 안된다네..스킬에 맞는 적당한 속도로 진입하고 탈출로쪽으로 머리 빨리 틀수있게 라인 잘잡자... 클릭아~~ 수고해줘~

힘들지만 참고 타야만 되는 이유~

누가 나보고 왜 스키를 타냐고 물으면 대답은 한가지다. ' 잘타고 싶어서~~ ' 몰론 재미도 있을터지만 시즌때 주말 아침 졸린 눈 뜨며 일어나 짐을 챙길때에는 가고 싶은 맘보다 편하게 한숨 더 자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하루쯤 편하게 쉬면서 TV도 보고 못다한 자시성찰의 시간도 가지고 싶다. 더군다나 임신한 아내의 불만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내가 스키타는걸 이해해줄려고 노력은 많이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이해하는것 같지는 않다. 사실 나도 '힘들지만 참고 타야만 되는 당위성' 을 찾지 못하겠는데 어찌 아내가 이 마음을 이해할수 있을까? 누가 일당 준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난 왜 힘들지만 왜 주말 아침 스키장으로 가는걸까? 구구절절 변명처럼 이런 저런 이유는 말할 수 있다. 굳이 오랫동안 이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난 당연히 그 이유를 안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답은 '잘 모르겠다' 이다. 어릴적부터 유난히 운동에는 소질이 없었다. 큰 키에 벌어진 어깨를 가졋건만 턱걸이, 던지기, 달리기 등 기초체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어릴때 집에서 혼자서 소꼽장난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하면서 혼자 놀았기 때문에 체력도 약했고 운동의 요령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니 학창 시절 줄곧 난 체육시간이 맘에 들지 않았다. 대학교때 시간을 내어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갔을때도 내가 앞으로 스키를 타게 되리란건 몰랐다. 방학을 이용해 일주일간의 스키캠프를간 이유도 이번기회가 아니면 평생스키를 못 탈것 같아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이후에 지금까지 난 줄곳 스키에 필이 꼿혀있다. 시작은 재미있어서 탔고 지금은 잘타기 위해서 탄다. 왜 잘타고 싶을까? --------------------- - 언제 쓴글인지 알지 못하나 2006년 쯤 인걸로 추정 - 'Draft' 상태로 15년 또는 그 이상 남아 있다.. 오늘에서야 발견하고는 ...

보유 도메인.

내가 가지고 있는 도메인들. 1. cdwarehouse.co.kr 공시디도 팔아보고 중고시디도 사고 파는 곳을 만들려다 일단 보류.. 2. greenfilm.com Redfilm 사려다가 못사고 bluefilm 도 안되서 그냥 산 도메인.. 3. snowbomb.co.kr 스키 좋아해서 관련 사이트 하나 만들어 볼까 하고 구입.. 4. reabileracing.co.kr 이놈은 릴라이어블레이싱 한국판 한번 해볼까 하고 구입했으나 흐지부지.. 이외에도 사놓고 돈을 안내서 자동해지 된 것들도 많고, 돈 받고 헐값에 판 것도 있음. 호스팅비도 많이 날렸으나 지금도 여전히 언젠가는 사이트 하나 만들거라는 꿈은 가지고 있음.

로체여 부탁한다~

로체야 나의 새로운 친구야. 사실 넌 나의 기대욕구에 별로 부합하는 면이 없구나. 조그맣고 당찬 체구가 아닌 약간 크면서 어딘지 느슨하고 뒤뚱이는 너의 몸체. LPi 엔진이라 기존 LPG 보다 많이 향상 됐다지만 여전히 가솔린보단 모자라는 파워에. 흡배기 튜닝으로 파워향상을 도모하기에도 뭔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면서. 동급 최저라지만 중형세단이라 무게도 많이 나가는 구나. 색상이 은색이라 새거라도 1년된 듯한 느낌, 2년돼도 1년된듯한 느낌 하지만 3년 되면 3년된 듯한 느낌. 휠도 알미늄이지만 15인치라 뽀대도 안나고 18인치 업하고 싶지만 모자라는 파워에 걱정이 앞서고. 아우디의 당찬 맛과 벤츠의 럭셔리 BMW 의 핸들링은 어디갔느뇨~~. 하지만 조수석 에어백으로 아내의 안전을 지켜주고, 여러가지 할인 받아 구매가격이 아반떼 보다 싸고 1년 유지비가 가솔린에 비해 반 가까이 다운되니 가정 경제 보탬되고, 뒷자석이 넓어 하나 더 낳더라고 안심이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단다. 로체야 네가 나의 유일한 선택이니 영광으로 생각하며 부디 사고없이 잘 지내길 바란다. 나도 너한테 최선을 다하마.

어릴쩍 꿈...

나중에 커서 뭐가 돼고 싶은데? 라고 물으면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다. 왜나면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 당시엔 누구나 다 대통령이라고 대답해 쥤으니까. 대통령 이후에 내가 뭘 되고 싶어 했는지 잘 기억에 나지 않는다. 뭐~ 비행기 조종사, 경찰관, 자동차 레이싱 선수 등등 이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남자 어린이 누구나가 그랬던 것 처럼. 철이 든 이후에는 정확한 직업을 꿈으로 생각하기 보단 이것 저것 하고 싶은게 많아서 모든걸 다 할수 있는 부자가 꿈이였던것 같다. 돈이 있으면 꿈꾸는 대부분을 할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불행한 현실이지만. ) 한때는 잠시 현실적으로 카센터 사장이 꿈이였던적도 있었고..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나를 곰곰히 돌이켜 보면 난 꿈꾼것 대부분을 이룬 것 같다. 하고 싶다고 생각한것 들은 어떤 형태로든 다 돼었다. ( 너무 작은 꿈들만 꾼걸까? 하긴 그때는 모든게 다 나한텐 어려워 보였으니까. ) 그래서 난 항상 머리속에 담아두고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은 이루어 진다고 믿는다. 알게 모르게 자기가 하는 모든 일들이 약간씩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난 여름에는 가족이랑 스키랑 보드를 타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보내고 겨울엔 말레이시아나 태국등지에서 싼 물가 혜택 좀 보면서 편하게 쉬고 싶다. 한국에도 1년에 한 두달쯤은 머물면서 친구들도 만나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효도도 하고 싶고.. 돈은 프리랜서로 좀 벌고 ,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임대 수익도 좀 있고, 별로 크지 않지만 골치아프지 않은 조그만 사업체에서 나오는 수익 좀 보태면 되지 않을까? 애기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기숙학교나 그런데 보내거나 아님 데리고 다니면 될것 같은데.. 누구누구들 처럼 좋은 차 타고 다니면서 몸종 몇 두고 화려하고 큰 집에서 살면서 고급 브랜드로 온 몸을 치장하며 지역사회에서 돈 많다는 소리들으면서 고급백화점에서 경외의 시선을 느끼며 카드 마구 글거 돼는 능력은 안 돼더라도~~~ 아껴...

란도를 보내며 새 친구를 맞이하다.

97년 10월 어느날 복학을 한 뒤 오랜 기다림 끝에 삐까뻔쩍한 너를 첨 보았다. 그 당시 넌 인기 차종이여서 계약하고 출고를 두달쯤 기다린 것 같다. 첫날 집에서 20Km 남짓한 학교까지 몰고 첨 등교하던 날 부터 약 일주일간은 익숙하지 않은 운전때문에 넘 피곤해 매일 일찍 잠들었던 기억. 이후 어느 순간부턴 란도없이는 외출을 삼가하게 되는 일까지 생겼지. 그 후 오늘까지 8년 4개여월의 시간동안 나와 언제나 함께 했구나. 취업으로 서울생활 첨 시작한지 1년간은 자주 보지 못했으나, 무리해서 서울로 가지고 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그 동안 탈난게 2번.. 한번은 아버지가 몰다가 기어가 3단에 들어간 상태에서 기어봉이 누워 버려 마운트인지 뭔지 교체, 한번은 내가 몰다 클러치페달이 쑤욱 들어가 버려 실린더 교체. 이 두번을 제외하곤 고장이 없었다. 엔진오일도 때마다 교체하기 어려웠을 만큼 별 관리도 없었는데 지금까지 제 실력 충분히 보여주며 가는 곳마다 든든했던 나의 란도리... 이제는 가는구나~~~ 사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너도 알지 그동안 우리 함께 했던 시간들.. 기억나냐? 바퀴 바꿔준다 쇼바 바꿔 준다 말뿐이였고, 변변히 뭐 해준것 하나없이 순정상태로 많이도 다녔구나. 내 손으로 세차 한번 제대로 못해줬는데.. 그렇게 그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군데 군데 기스와, 한순간의 방심으로 생긴 오른쪽 테일에 상처.. 한때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던 네가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군데군데 상처가 많이도 생겼다. 마냥 새차 같았던 네가 언제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되었니? 내 기억엔 항상 처음 만났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데. 나도 너처럼 세월을 겪었고 하고 싶은거 많았던 대학생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곧 딸이 생긴단다. 시간이 많이도 흘렀지.. 새차를 맞이한 기쁨에 처리를 고심하며 누가 빨리 가져가 주길 바랬던 잠시의 시간을 후회한다. 미안하구나. 잘가라~ 2006년 3월

일본에서 독서실 라면 먹다.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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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시에 이것저것 선택할수 있다. 한글로 된 주문서도 있으니 안심.맵게 또는 싱겁게, 고기도 넣고 빼고를 맘대로 할수 있다. 보다시피 독서실 분위기로 모두들 열심히 먹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일본에서 독서실 라면 먹다.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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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캐널시티 지하의 유명 라면체인점.. 자판기에서 돈 넣고 메뉴를 정한다음 티켓을 들고 들어가면 우리나라 독서실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면서 몇가지 절차를 거치면 자리앞 구멍으로 라면을 내주고 보시다시피 커튼을 내려준다. 오른쪽에 수도꼭지도 보인다.

일본에서 독서실 라면먹다.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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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에서 먹은 하카타라멘.. 사실 맛보다 먹는방법이 더 인상깊었씀. 맛은 나카타 강변 포장마차에서 먹은 라면이 훨 휼륭하고 기가 막혔음.

퇴근해서 수제 만두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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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가 젤 좋다. 먹는거는.. 이 만두 저 만두 많이도 먹었다. 어릴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김치만두는 기억이 가물가물.... 오늘 퇴근하니 만두를 만들고 있네. 오 웬 감동 ~ 내가 만두하면 사죽을 못쓴다는 걸 익히 알고있서 날 위해 첨 시도. 결과는 대만족. 천마산 가는길에 유명한 만두집 '어랑손만두'랑 맛은 거의 흡사했다. 보다시피 모양도 아주아주 휼륭하여 아름답기 그지 없다. 손모델은 만두 제작자가 직접 해주었다.

워키토키 - 팔뚝에 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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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샵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한 상품. 기능, 성능 모두 만족. 슬로프에서 넘어지거나 눈밭을 굴려도 절대 무전기가 달아날 염려없음. 물론 생활용무전기만 쓸수 있다. 왜냐~~ 보다시피 작으니까. 작년시즌에 스키장에서 써본 결과 별 쓸모를 못 느꼈는데, 올시즌에 비디오 촬영하는데 촬영기사(?)와 교신에 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생의 동반자 - 카시오 PRG-8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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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판, 월드타임, 고도계, 기압계, 알람외에등산시 하강속도, 등반속도를 알수 있게끔 해준다.무엇보다 휼륭한 것은 밤마다 잠을 자며 배터리를 세이브한다.물론 손목에 차고 있으면 잠을 자지 않는다. 태양, 형광등을 이용해 충전도 가능하기 때문에 배터리 교체가 필요없서100M 방수성능이 배터리 교체로 떨어질 염려가 없다. 결혼때 예물로 받은건데 물론 나도 초 울트라 슈퍼 형광기능이 있는 카시오 베이비샥을 예물로 줫다. ㅋㅋ 물론 내가 빡빡 우겨 한일이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벌써 2시즌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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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 월드컵 RC 175cm 작년 시즌말에 상처 투성이 이놈을 용평에서 접수한 다음 신혼여행으로 스위스 체르맛까지 동행한 놈.. 되도 안한 실력에 스키도 여러번 바꿨지만 이놈은 웬지 오래오래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대회전 스키보다 작은 적당한 회전반경 16m 이고, 첨 가져보는 샌드위치 스키로 캠버 쌩쌩... 언제라도 새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필카 Yashica 35G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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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RF 카메라 야시카 35 GX. 이 놈 구하느라 손가락 품 팔았씀다... 우여곡절끝에 내 첫 레인지파인더 카메라가 되기로 놈이 단단히 결심한 모양이네요. 저도 맘에 쏙듭니다. 특별히 블랙을 구할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 블랙으로 구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보유중인 올림푸스Trip 35 의 재미에 화들짝 놀라 한대 더 구한 필카....

천마산에서 ( 정모 강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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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폴의 적정 길이

폴 길이 = 자신의 신장 * 67% 동서양인의 신체특징을 무시하고 막 적용해서 사용해도 되는건지 아닌지 알수는 없음. 참조만 할것. [출처] Dr.Spark 의 Q&A의 한 댓글에서 발췌.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스티브 잡스(50)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2일(2005. 6.12)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는 축사에서 그의 인생역전과 삶의 교훈, 메세지를 평이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전하고 있다. 오늘 세계 최고 대학 중 한 곳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오늘이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와본겁니다. 오늘 저는 내 인생의 세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대단한 얘기는 아니구요. 오직 세 가지 얘기일 뿐입니다. 첫번째 얘기는 점을 잇는 것에 대한 얘깁니다. 저는 리드 대학(미국 오레곤주에 있는 명문 대학)을 6개월 다니다 관뒀습니다. 그러나 18개월간인가 대학 안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진짜 그만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어리고 미혼이었던 대학원생이었고, 저를 입양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약속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변호사 부부는 마지막 순간에 "딸을 원한다"며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저의 생모는 현재의 양부모에게 한밤중에 전화걸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원치않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이를 입양하시겠어요?" 양부모님은 "물론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생모는 그러나 저의 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부는 고교도 나오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그래서 입양서류에 사인하길 거부했습니다. 몇 개월 뒤 그녀는 저의 양부모님으로부터 저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에야 마음을 누그러뜨렸습니다. 그리고 17년 후 저는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전 순진하게도 스탠포드만큼 학비가 많은 대학을 골랐고 노동자였던 양부모님의 저축은 모두 제 학비로 지출되고 있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뒤 저는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